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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시도

admin 2018.11.18 01:02 read.1

  야심한 밤에는 보름달조차 구름 뒤에 숨어 빛을 뿌리지 못한다. 아아, 뾰족하게 지붕을 올린 성은 경비원들이 열심히 경비를 돌고, 어둠을 바라보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들의 눈은 어둠속에 숨어 날아가는 나비를 바라보지 못한다. 어쩌다 마주친 인간이, 아아 불쌍한 아이야. 눈을 감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홀려버릴 텐데. 이미 늦었어, 나비의 날갯짓 몇 번이면 목은 이미 바닥을 구르고 있다. 겨울의 성에서 날갯짓하는 검은 나비는 너무 푸른색이라 검게 보인다. 하늘하늘 마치 날아갈 것 같은 움직임으로, 하늘색의 얼음을 깨부수러 가나?

 

 

  굳게 닫힌 문은 너무 쉽게 열린다. 그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탓일까, 그 앞에 서는 경비는 없다. 누구보다 차가운 냉혈한이라는 소문이 거짓은 아니었나보다. 경비병들조차 이쪽으로 오면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나비는 쉬이 어둠속에 숨어들어 날아가고, 어둠은 늘 그래왔듯 그 모습을 가린다. 화려하게 장식된 문은 고급이라고 증명하듯 소리 없이 열리고, 방의 정경은 밀려드는 어둠에 뒤덮인다.

  불쌍한 백작, 아직 잠들지 못하였네. 잠들었다면 평생을 잠 속에서 보냈겠지만. 나비는 조용히 백작의 모습을 감상했다. 꽃 같은 눈동자는 머릴 자르고 나서 가져갈까? 저 달빛 같은 머리카락은 챙길까? 아니 머리를 들고 가서 방부처리를 해도 나쁘지 않겠네. 일단, 죽이고나서 생각하면 될 문제다.

  나비는 조용히 움직였다. 칼을 손에 쥐고, 한 번에.

 

 

  "버러지가 숨어들었군."

 

 

  차가운 말 한마디와 함께 겨울이 불어 닥쳤다. 백작은 그 아름다운 얼굴과 달리 몰아치듯 나비를 낚아챘다. 허나 그녀도 약하지 않아서, 달빛조차 없는 방 속에서 공방이 이어진다. 엎치락뒤치락, 숨소리 하나 없는 싸움. 한 방만 잘 들어가도 둘 중 하나는 죽는다. 허나 둘의 실력은 박빙이라, 체력전으로 흘러 진 사람은 나비였다. 결국 바닥위에 초라하게 널브러진 나비와, 그 위를 당당하게 올라탄 백작.

  구름이 걷혔다.

 

 

  달빛아래 드러난 나비는 한 명의 아이였다. 무심하고, 조금 멍해 보이는 평범한. 그 얼굴에 걸맞은 무심한 목소리로 나비는 나직하게 속삭인다.

 

 

  "조용히 죽어주셨으면 합니다, 백작."

  "내가 누군지는 알고 하는 말인가?"

  "The earl of Camus. Or, Icy Count."

  "알면서 잘도 지껄이는 군."

 

 

  손목을 제압당한 상태로는 공방이 불가하다고 판단한 나비는 지체 없이 배후를 묻는다. 훌륭한 암살자의 덕목 중에는 빠른 자결 또한 포함되어있는 법이라, 그녀는 제 입속에 숨겨온 독을 물면 된다. 삼키는 순간 한 줌 핏물이 되어 사라질 운명. 그녀는 거부할 생각이 없었으나 그 운명을 강제로 끊어낸 사람은 백작이었다.

  이로 독을 물기 직전에, 거친 손이 입속을 헤집는다. 손가락이 이빨사이를 뒤지고, 입천장을 훑거나 혀를 누른다. 마치 키스하는 듯한 움직임.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랑이나 정염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정도. 나비는 이로 독로 손가락을 물었으나 턱을 잡혀 결국 모두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혀 안쪽을 찌르는 순간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죽어버린 눈이 백작을 응시한다.

  백작은 독을 찾아내었다. 나비는 제가 죽을 방법이 사라졌음을 알아차린다. 아아, 어쩌지.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도록 하지." 

 

 

  역광에 비친 남성의 얼굴이 미미하게 미소 지었고, 부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비는 눈을 감았다.

 

2016.08.15 첫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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