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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넬 버스 AU

admin 2018.11.18 00:58 read.8

   “선배, 뒤”

   “막고 있으면서 일일이 보고하지 마라.”

   “어머, 언제는 말하지 않았다 질책하신 분이 아니었나요.”

   “하나하나 대꾸하지 마라.”

   “까칠하기도 하시지.”

   “네놈은 능력만 쓰면 성격이 성가셔져.”

   “여왕의 능력이니 말입니다. 오만은 힘을 가지지 못하면 죄악이지만 힘을 가진 자에게는 자신감이지요.”

 

  제게 쏟아지는 피를 쳐내며 웃었다. 즐거운 웃음이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온다. 전장 위에서는 늘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쏟아지는 생명을 맞으며, 쳐내며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심장의 울림이, 숨결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의 숨결도, 적의 숨결도 모두 제 손 위에 있다.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할 수 있을까? 

  이 순간 저는 조율자다. 광대한 힘을 뽐내는 그의 현을 매만져가며 소리를, 힘을 증폭시킨다. 날뛰는 힘을 안정시키고 재촉하여 제 뜻대로 움직인다. 현을 매만져지면 제 의지대로 소리를 울린다. 제가 조율 할 악기는 광대한 능력, 어긋나고 풀리는 현을 붙잡아 그 위에 활을 놀린다. 광대한 음악을 핏빛 전장위에 연주해 보인다. 청중은 모두 값을 목숨으로 치르고, 연주자는 웃는다. 악기의 의지따위, 제가 상관할 필요 있나!

  그는 그 자체로 완벽함에도 어딘가 불안정하다. 저는 그 불안정을 매만진다. 작게 어긋난 틈에 들어가, 그 거대한 능력을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유쾌하다. 지독하게도 유쾌하다. 아아, 정말 중독될지도 몰라.

 

  제 위로 달려드는 이를 양단한 그에게 보답해 그의 등을 노리던 자의 머리를 터뜨렸다. 튀어나오는 액체들을 막아낸다. 바닥이 다시 한 번 질척하게 젖어든다. 그럼에도 그와 저의 옷은 여전히 순백을 유지하고 있다. 붉은 피로 가득 찬 전장 위를 누비는 백정장, 흰색 원피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모습은 지독히도 이질적이다. 마치 전장 위에 강림한 천사와 같이. 뭐, 천사라기에는 악마에 가깝겠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저, 즐거우니 된 일이지.

  겨우 둘, 이라고 방심하던 적들의 최후는 어떤가. 수많은 센티넬이 제 눈 앞에 쓰러져 있다. 무능력자라며, 가이드조차 아닌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냐 그리 소리치던 이들은 다 죽어 입을 다문다. 역시 숨을 끊어버리기 전에 물어봤어야 했어. 그 모욕하던 무능력자의 손에 죽는 기분은 어때요?

 

   “이제 끝인가요?”

   “아아, 그렇다. 이제 이 것을 마지막으로 죽여야 할 인간은 더 이상 없어.”

   “그것 참 아쉽게 되었네요. 즐거웠는데 말이에요.”

   “네놈의 즐거움을 위해서 놀아날 생각은 없다 이제 마무리하도록 하지. 더 이상 유지하는 일은 불필요하다.”

   “곤란하네요, 저는 아직 충분히 즐기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언제 봐도 기분 나쁘군. 그 행동은.”

   “어머, 상처 입습니다.”

 

  손가락을 나긋하게 움직여 입 위를 가린다.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이 정도로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나 저나 잘 알고 있다. 멍하게 뿌연 안개가 온 정신을 지배하고, 기분은 극도로 고양된다. 능력을 사용하는 일은 마약을 하는 일과도 같다. 머릿속은 극도로 청명해지고 동시에 멍하다. 모든 반응을 반사 신경이 해내고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한다. 덕에 저는 이러지만. 

  작게 킥킥거리며 제 앞에서 꿈틀거리는 시체에게 무형의 칼날을 내리쳤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핏방울을 그의 능력으로 박아낸다. 옷에 피 튈 뻔했네.

 

  “뒷 처리를 깔끔하게 하셨어야죠.”

  “우스운 말을 하는군. 그건 네 담당이 아니었나? 제 할일을 해야 할 이가 누군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좋아.”

  “아아, 매정하기도 하셔라. 조금 맞춰주면 어디가 덧나나요?”

  “네놈의 능력부터 거둬라. 맞춰주는 일도 성가셔.”

  “재촉하지 않아도 그럴 테니 걱정 말아요, 백작님.”

  “지독하군, 네놈과 같은 능력을 가진 자들은 다 같은가?”

  “글쎄요? 저는 아시다시피 이례적인 케이스라서요. 찾으면 물어볼게요.”

 

  물론 당신이 찾아줘야겠죠? 저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니까요. 킥킥거리며 덧붙인 말에 그의 표정이 굳는다. 저리도 들여다보기 쉬운 인간이니 놀려먹지. 어쩜 저리 올곧은지. 여왕을 모시는 기사라는 말에 어울리게 지독히도 바르다. 물론, 그 말이 성격이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 성격은 빈말로도 좋다고 못하지, 그렇고 말고.

 

  “우언은 이쯤에서 그만두지.”

  “아, 한참 재미있는데.”

  “한 마디만 더 하면, 베겠다.”

  “지독하기는. 저를 베면 당신의 능력은 다시 불완전해진다는 사실은, 알고있죠? 백작님?”

 

  한숨을 내쉬는 그를 보며 웃는다. 그는 절대 저를 죽이지 못한다. 저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 불완전해지는 길을 제 손으로 택할리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리도 재미있는 반응을 보이지. 나른한 웃음이 입술 밖으로 빠져나오고, 저는 피의 따스함이 식어가는 광경을 감상한다. 보람찬 하루였어. 수많은 생명이 스러졌고, 그 잔해 위에서 저는 웃는다. 평소와 같은 일상이다.

 

  "다음에도, 이리 전투 할 일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허튼 소리."

  "매정하기도 하셔라."

 

  가녀린 목소리를 흉내내어 말했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꼴을 감상하며 천천히 손을 거두어들인다. 현으로 연결되었던 정신이 끊어지고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지독한 혈향이 코를 찌른다.


  임무 완수. 맑은 정신이 다시 감정을 억누른다. 무의식이 의식 아래 억압된다.

 

  “귀환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지.”

 

  인상을 찌푸린 모습은 어딘가 불편해 보였으나, 부상은 제 소관이 아니다. 알아서 할 일이니 제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잠시 그의 표정을 응시하다 고개를 돌렸다. 제게 굳이 말을 하지 않는다면 과도한 간섭은 필요치 않겠지. 임무 이외의 교류는 지침에 나와있지 않다.


2016.01.02 첫 업로드
2016.02.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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